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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ALPHABET은 설총이 체계화시킨 이두문자

Etymologist 2022. 8. 6. 01:14

◇조선왕조실록 ◇

■세종대왕은 문자를 창조하지 않았다.
■ENGLISH ALPHABET 은  이두문자로 수천년 전에 만들어진 문자
■대한민국  국문인 소리글씨와 함께 쓰이다가 분리되며  훗날
슬라브족(실라)이 사용하던 문자를 후 고려(후한시대)시대  파견된  관리들 과
그지역 슬라부족간 의사소통을 위해 설총이 이두에 중앙성  음을 표준화시켜
체계화시킨게 오늘날 ENGLISH ALPHABET 입니다.

(**신라삼국통일 조선왕조실록을 근거해 고종시기 날조된 역사로
이시기는 후 고려가 대체합니다, 즉 파견된 슬라브 수령은 고대 한국인 피지배계층은
구라파계 백인을 말합니다)

세종실록 103권, 세종 26년 2월 20일 경자 1번째기사

집현전 부제학(集賢殿副提學) 최만리(崔萬理) 등이 상소중에서...

언문은 모두 옛 글자를 본뜬 것이고 새로 된 글자가 아니라.’ 하지만, 글자의 형상은 비록 옛날의 전문(篆文)을 모방하였을지라도 *** 음을 쓰고 글자를 합하는 것은 모두 옛것에 반대되니 실로 의거할 데가 없사옵니다.

(***편집된 부분으로 옛 사람이 만들어 정절 과 회절함이 지극히 자상하다고 실록에 기록하고있습니다)

신라 설총(薛聰)의 이두(吏讀)는 비록 야비한 이언(俚言)이오나,
모두 중국(중앙성)에서 통행하는 글자를 빌어서 어조(語助)에 사용하였기에,
문자가 원래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므로, 비록 서리(胥吏)나 복예(僕隷)의 무리에 이르기까지라도 반드시 익히려 하면, 먼저 몇 가지 글을 읽어서 대강 문자를 알게 된 연후라야 이두를 쓰게 되옵는데,
이두를 쓰는 자는 모름지기 문자에 의거하여야 능히 의사를 통하게 되는 때문에,
이두로 인하여 문자를 알게 되는 자가 자못 많사오니,
또한 학문을 흥기시키는 데에 한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두는 시행한 지 ***수천 년이나 되어 부서(簿書)035) 나 기회(期會)036) 등의 일에 방애(防礙)됨이 없사온데,

***어찌 예로부터 시행하던 폐단 없는 글을 고쳐서 따로 야비하고 상스러운 무익한 글자를 창조하시나이까.  

(***편집 왜곡 어찌 예로부터 시행하던 폐단없는글...즉 소리글씨는 창조된게 아님..  뒤에 창조를 갔다붙임)

035]부서(簿書) : 장부와 문서.
[註 036]기회(期會) : 회계와 관련하여 기한을 맞추는 것.

만약에 언문을 *시행하오면 관리된 자가 오로지 언문만을 습득하고 학문하는 문자를 돌보지 않아서 이원(吏員)이 둘로 나뉘어질 것이옵니다.

(창조로  편집 날조하고 뒷문장은 *시행한다 나오죠? 즉 처음 과 끝 문장은 문맥이 같은데
중간에 창조라는 용어를 편집해 놓은 것입니다)

가령 언문이 ***전조(前朝) 때부터 있었다 하여도 오늘의 문명한 정치에 변로지도(變魯至道)038) 하려는 뜻으로서 오히려 그대로 물려받을 수 있겠습니까.

(***전조에 있었다  하여도..옛 사람이 소리 글씨를 만들었다실록에 기록되어있습니다.)

변로지도(變魯至道) : 선왕(先王)의 유풍만 있고 행하여지지 않던 노(魯)나라를 변하여 도(道)에 이르게 한다는 뜻.

"설총의 이두는 비록 음이 다르다 하나, 음에 따르고 해석에 따라 어조(語助)와 문자가 원래 서로 떨어지지 않사온데,
(이두=잉글리쉬 알파벳은 악센트가 함께 들어간 단어로 구성)

이제 언문은 여러 글자를 합하여 함께 써서 그 *음과 해석을 변한 것이고 글자의 형상이 아닙니다.

(*해석 왜곡.. 바른 해석:  여러 글자가 조합돼  음에 해석하는것이지  글자 형태가 변하는게 아니다.)

또 새롭고 기이한 한 가지의 기예(技藝)라 하온 것은 특히 문세(文勢)에 인하여 이 말을 한 것이옵고 의미가 있어서 그러한 것은 아니옵니다.

세종왈~~
"내가 너희들을 부른 것은 처음부터 죄주려 한 것이 아니고, 다만 소(疏) 안에 한두 가지 말을 물으려 하였던 것인데, 너희들이 사리를 돌아보지 않고 말을 변하여 대답하니,
**너희들의 죄는 벗기 어렵다."

하고, 드디어 부제학(副提學) 최만리(崔萬理)·직제학(直提學) 신석조(辛碩祖)·직전(直殿) 김문(金汶), 응교(應敎) 정창손(鄭昌孫)·부교리(副校理) 하위지(河緯之)·부수찬(副修撰) 송처검(宋處儉), 저작랑(著作郞) 조근(趙瑾)을 의금부에 내렸다가 이튿날 석방하라 명하였는데,

오직 정창손만은 파직(罷職)시키고, 인하여 의금부에 전지하기를,

"김문이 앞뒤에 말을 변하여 계달한 사유를 국문(鞫問)하여 아뢰라."

하였다.

<조선글씨어원연구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