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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도 왜의 난입니다. 청나라는 대조선 청군 즉 군벌을 일본 만주제국 역사로 날조한듯합니다.》※※

Etymologist 2022. 5. 8. 01:43

※※《병자호란도 왜의 난입니다.  청나라는 대조선 청군 즉 군벌을 일본 만주제국 역사로 날조한듯합니다.》※※

아래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입니다.


고종실록 36권, 고종 34년 10월 11일 양력 3번째기사 1897년 대한 광무(光武) 1년시임 대신과 원임 대신 이하의 관리들을 인견하다고종실록 35권, 고종 34년 5월 16일 양력 2번째기사 1897년 대한 건양(建陽) 2년임상준이 황제에 즉위할 것을 주청하다

의관(議官) 임상준(任商準)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생각하건대

■우리 동방(東邦)은 기자(箕子) 이후부터 예악 문물(禮樂文物)과 전장 법도(典章法度)가 찬연히 모두 갖추어졌습니다.
아! 훌륭합니다.

■우리 태조 대왕(太祖고려大王)께서 삼한(三韓)을 통합하고 뛰어난 자손들이 연이어 계승하여 마침내 우리 성상(이성계 聖上)이 왕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기자기 이후 삼한(삼국=삼국지=위촉오=고구려,실라,백제)으로 분열된것을 고려(후고려)가 통합...》





***《※단발령에 대한 논의...》
고종실록 36권, 고종 34년 10월 13일 양력 2번째기사 1897년 대한 광무(光武) 1년국호를 대한으로 하고 임금을 황제로 칭한다고 선포하다




"봉천 승운 황제(奉天承運皇帝)001) 는 다음과 같이 조령(詔令)을 내린다.
짐은 생각건대,



단군(檀君)과 기자(箕子) 이후로 강토가 분리되어 각각 한 지역을 차지하고는 서로 패권을 다투어 오다가 고려(高麗) 때에 이르러서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을 통합하였으니,
이것이 ‘삼한(三韓)’을 통합한 것이다.

***《※기자기 이후 삼한(삼국=삼국지=위촉오=고구려,실라,백제)으로 분열된것을 고려(후고려)가 통합...》


지금 국호를 ‘대한(大韓)’이라고 정한다고 해서 안 될 것이 없다.
또한
매번 각 국의 문자를 보면 조선이라고 하지 않고 한(韓)이라 하였다.

이는 아마 미리 징표를 보이고 오늘이 있기를 기다린 것이니, 세상에 공표하지 않아도 세상이 모두 다 ‘대한’이라는 칭호를 알고 있을 것이다."

〖서양(西洋)에서〗 동양(東洋)을 노리고 있는 때에는 규례를 살펴 형식이나 차리는 한 가지 일에 지나지 않는데 어찌 오늘날에 시급한 일이겠습니까?

옛날에 한(漢) 나라 문제(文帝)는 나라가 넉넉지 않은 것이 아니었는데도 오히려 개삭(改朔)할 겨를이 없었는데, 더구나 오늘날이 어떤 때입니까?



고종실록 33권, 고종 32년 11월 16일 임자 2번째기사 1895년 대한 개국(開國) 504년이도재가 사직 요청과 함께 연호 제정과 단발령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리다

게다가 ※※단발(斷髮)에 대한 논의는 더욱 전혀 옳지 않습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우리나라는 단군(檀君)과 기자(箕子) 이래로 편발(編髮)의 풍속이 점차 고계(高髻)의 풍속으로 변하였으며 머리칼을 아끼는 것을 큰일처럼 여겼습니다.
이제 만약 하루아침에 깎아버린다면,
■(편발=뎅기머리) 4천 년 동안 굳어진 풍습은 변화시키기 어렵고 억만 백성의 흉흉해하는 심정을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니, 어찌 격동시켜 변란의 계기가 되지 않을 줄을 알겠습니까?




고종실록 13권, 고종 13년 1월 23일 을묘 2번째기사 1876년 조선 개국(開國) 485년일본과 통상을 맺는 일에 관하여 최익현이 상소하다

전 참판(參判) 최익현(崔益鉉)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신은 적들의 배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의정부(議政府)에서 응당 확정적인 의논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여 여러 날 동안 귀를 기울이고 기다렸으나 아직도 들은 바가 없습니다.

항간에는 그들의 속셈이 화친을 요구하는 데 있을 것이라고 소문이 떠돌아 입 가진 사람은 모두 분격하며 온 나라가 뒤숭숭합니다.
이 소문이 시행된다면 전하의 일은 잘못되고 말 것입니다.

화친이 상대편의 구걸에서 나오고 우리에게 힘이 있어 능히 그들을 제압할 수 있어야 그 화친은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겁나서 화친을 요구한다면 지금 당장은 좀 숨을 돌릴 수 있겠지만, 이후 그들의 끝없는 욕심을 무엇으로 채워주겠습니까? 이것이 나라를 망하게 하는 첫째 이유입니다.

그들의 물건은 모두 지나치게 사치한 것과 괴상한 노리갯감들이지만, 우리의 물건은 백성들의 목숨이 걸린 것들이므로 통상한 지 몇 년 되지 않아서 더는 지탱할 수 없게 될 것이며, 나라도 망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나라를 망하게 하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그들이 비록 왜인(倭人)이라고 핑계대지만 실제로는 서양 도적들이니, 화친이 일단 이루어지면 사학(邪學)이 전파되어 온 나라에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나라를 망하게 하는 세 번째 이유입니다.

그들이 뭍에 올라와 왕래하고 집을 짓고 살게 된다면 재물과 부녀들을 제 마음대로 취할 것이니, 이것이 나라를 망하게 하는 네 번째 이유입니다.


■이런 설을 주장하는 자들은 병자년(1636) 남한산성(南漢山城)의 일을 끌어들여 말하기를, ‘병자년에 화친을 한 뒤로 두 나라가 서로 좋게 지내게 되어 오늘까지 관계가 반석 같은데,
지금은 왜 그렇게 할 수 없단 말인가?’라고 합니다.

저들은 재물과 여자만 알고 사람의 도리라고는 전혀 모르는데, 그들과 화친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나라를 망하게 하는 다섯째 이유입니다.

****《※위내용을 보시면 병자호란도 왜인의 침략입니다....지금 청나라는 일본이 만주제국 식민사학으로 날조 대조선 청군...》




뒷날에 역사를 쓰는 사람들이 이 일에 대하여 크게 쓰기를, ‘아무 해 아무 달에 서양 사람이 조선에 들어와 아무 곳에서 동맹을 맺었다.’라고 한다면,
이것은 기자(箕子)의 오랜 나라가 하루아침에 오랑캐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순조(純祖) 때에는 서양 사람이 몰래 들어왔다가 발각되어 죽음을 당했고, 우리 헌종(憲宗)도 들어와서 염탐하는 자들을 모두 주륙하였으니 이것이 전하의 가법(家法)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기어든 왜인들은 서양 옷을 입고 서양 포를 쏘며 서양 배를 타고 다니니, 이는 왜인이나 서양 사람이나 한 가지라는 것의 뚜렷한 증거입니다. 무엇 때문에 그들에게 속겠습니까?

감히 고려 때의 우탁(禹倬)과 선정신(先正臣) 조헌(趙憲)의 고사를 본받아 도끼를 가지고 대궐 앞에 엎드렸으니, 삼가 바라건대 빨리 큰 계책을 세우고, 조정 관리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라도 화친을 주장하여 나라를 팔아먹고 짐승을 끌어들여 사람을 해치려고 꾀하는 자가 있으면 사형으로 처단하기 바랍니다. 만일 그렇지 않을 경우 이 도끼로 신에게 죽음을 내리신다면 조정의 큰 은혜로 여기겠습니다."
하였다.


<조선왕조실록>